900일간의 폭풍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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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책의 제목과 홍보 문구에 이끌려 사게 된 책.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사랑’의 프로듀서로, 다큐멘터리에서 다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방영 당시 화제가 되었다는데 어느 정도였을까?  과학다큐멘터리였기에 ‘과학의 눈으로 본 사랑’임은 피할 수 없다.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사랑은 단지 화학작용’일 뿐이라고 이 책 역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단순한 화학작용들의 ‘파급효과’에 대해서 더 많이 들려준다. ‘북경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뉴욕에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단순한 뇌 속의 화학작용이 삶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수 있다.

단지 과학다큐멘터리가 아닌 ‘감성과학다큐멘터리’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였던 ‘사랑’. TV를 통해 대중에게 보여주는 내용으로는 적절하지만, 더 많은 궁금증을 품은 독자들에게는 좀 그 깊이에서 아쉽겠다. 감성 쪽으로도 과학 쪽으로도, 전문가들의 조언이 좀 많을 뿐 ‘깊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나, 사랑을 잃은 사람들 모두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일은 괜찮은 경험이 되겠다. 처음으로 찾아올 사랑이나,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나, 다시 찾게 될 사랑을 위해서.

다음은 이 책에서도 인용한 한 구절로,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글이 아닌가 한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끊임없이 사랑해라. 그것이 빗나간 사랑이라 해도, 사랑해서는 안 될 대상이라 해도 좋다. 아예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올곧은 삶보다 죄로 가득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면서 엇나가는 삶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 윤구병


그렇다지만 이젠 빗나가지 않은, 사랑해도 좋을 대상과의 사랑을 꿈꾸어본다. 모두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이 가슴 시리게 하지 않는,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2007/04/23 19:31 2007/04/23 19:31

수 많은 바람의 노래들, 'Maximilian Hecker의 Lady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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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ilian Hecker'의 2005년 작(作) 세번째 정규앨범 'Lady Sleep'.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어색하지만 '수면의 숙녀' 정도가 될까요? 영어 사전을 보면 'Lady'는 귀족의 부인이나 딸의 성명에 붙여쓰는 경칭이라고도 하니, 잠(sleep)을 여성화하기 위한 제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목부터 '잠'이니, 그래서 제목만큼이나 몽환적인 느낌의 곡들이 많인 수록되어 있는 앨범입니다. 제가 이 앨범과 같이 구입한 4집은 뒷전으로 할 정도로 좋은 앨범이구요. 이 앨범을 들으면서, 특히 제가 배경음악으로 구입할 정도로 마음에 들던 곡들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들 모두, 같은 바람이 아닌 각기 다른 '세기'와 '습도'와 '온도'의 바람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바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Birch', 우리말로 '자작나무'라는 뜻을 갖는 제목의 '찬가'입니다. 도입부의 바람조차 숨을 죽인 고요는 우리를 눈이 쌓인 울창한 숲 한 가운데 이끌고, 그 발걸음은 홀로 달빛을 받으며 서있는 은빛의 자작나무에서 끝납니다. 갑자기 격정적으로 흐르는 노래처럼, 순간 자작나무를 감싸는 회오리바람이 불어 시야를 가립니다. 노래가 끝나면서 바람이 멈추면 자작나무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달빛만 밝습니다. '찬가'라고 소개한 이유는 가사때문입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Anaesthesia', '마취' 혹은 '무감각'이라는 제목을 가진 곡입니다. 겨울을 녹이는 초봄의 미풍같은 느낌이고, 가사를 살펴보아도 제목처럼 상당히 세상의 모든 일을 잊을 법한 '황홀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황홀함 속에서 안타까움도 느껴집니다. 특히 마지막 가사 'Oh my lord, I will be'에서 그렇습니다. 간주에서 아득히 들리는 '라라라'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혹시 이런 황홀함이 '바람 앞의 촛불'같은 상황일까요? 아니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인지도 모릅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말이죠.

'Summer days in bloom',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화창한 이른 여름의 오후, 숲이 울창한 공원의 나무가지 사이로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 사랑하는 이와의 데이트. 이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또 있을까요?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속 사랑하는 이와의 산책, 세상은 멈추고 이 순간이 영원히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행복에 눈물겨울 뿐입니다.

'Everything inside me is ill', 제목만큼이나 흐린 가을날의 바람같은 곡입니다. 하늘은 흐린 잿빛, 낙엽이 진 길을 거니는 청년의 우수가 느껴집니다. 바람에 거리의 낙엽도 청년의 머리카락과 옷깃도 흩날립니다. 슬픈 청춘은 어느 곳을 향하는 걸까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

'Help me', 자연에 의한 바람보다는 사람의 움직임에 의한 바람이 떠오릅니다. 짙은 어둠 속 눈분신 은반 위로 잔잔히 내리는 눈과 그 속에서 홀로 춤추는 이의 몸짓에 따라 바뀌는 바람이 그려집니다.

'Dying', 제목에서부터 쓸쓸함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굵은 눈발이 내리고 인적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걷는 한 사람을 떠오르게 합니다. 눈물마저도 얼어붙게 하는 눈보라에서도 'I'm dying'이는 처절한 외침은 묻히지 않고 메아리가 되어 퍼집니다. 아니, 이미 입끝을 떠나자마자 거센 바람 속에 묻혔지만, 가슴 속에서는 울려퍼지고 있지도 모릅니다.

'Lady Sleep', 자장가같은 곡입니다. 그래서 열린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꿈나라로 가는 길을 배웅하는 잔잔하고 포근한 바람입니다. 몇 십초의 정적이 끝나면 히든 트랙이 이어집니다. 꿈나라의 모습일까요? 앨범에 전반으로 흐르는 쓸쓸함과는 다르게 밝고 희망찬 느낌입니다. 행복한 꿈을 꾸는 밤인가봅니다.

'The days are long and filled with pain', 보너스 트랙으로 Maximilian Hecker'의 동료가 부른 버전이 실려있습니다. 조금은 서늘하고 조금은 건조한, 긴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의 바람같은 곡입니다. 길고 지루한 여름같은 사랑이 끝나고 이별의 문턱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요? 그래서 노래는 절망적인 만큼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There's still a lot for us to see in this life.'이라는 마지막 가사처럼요.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요즘 제가 듣는 외국 앨범들은 정말 한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지만, 하나같이 주옥같은 앨범들이고 이 앨범 역시 그렇습니다. 아직 Maximilian Hecker의 모든 앨범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우수로 가득찬 감수성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곡 하나 하나가 너무나 좋고, 그냥 CD를 CDP에 넣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도 건너뛸 트랙이 없을 정도 앨범의 흐름도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오래 많이 들었지만, 이 앨범에 질리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법 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7/03/25 20:08 2007/03/25 20:08

허민 - Vanilla Sh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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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년에 발표된 '허민'의 데뷔 앨범 'Vanilla Shake'.

'허민'이라고 하면 낫선 이름이겠지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라면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일 겁니다. 바로 '허민'이 2003년 15회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타이틀이 있는 그녀을 알기에 앞서 2004년 홍대 '사운드홀릭'에서 '바닐라 쉐이크'라는 밴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밴드의 이름과 동일한 그녀의 데뷔 앨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는 기분에 짧게 소개해 봅니다.

'어처구니가 없네',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송 느낌의 키보드 연주로 시작하는 경쾌한 곡입니다. 따뜻한 느낌의 키보드 연주와  발랄한 노래의 교차가, '슬픔'을 주로 노래하는 요즘 노래들 치고는 좀 언밸런스한 느낌도 있지만, '풋풋한 젊음'이 느껴져 좋습니다.

'Shake Song', 흥거운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곡으로 그루비(groovy)한 느낌은 2004년에 보았던 그녀의 밴드, '바닐라 쉐이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강남역 6번 출구 앞', 역시 영롱한 키보드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느린 템포의 곡입니다. 강남역에서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강남역 6번 출구'를 제목으로 하고 있기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허민 스타일'을 들려주는 곡이기 때문인지, 아무튼 타이틀 곡이기도 합니다. 흐른 날, 분위기 있는 찻집의 창 밖으로 슬로우모션 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거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침이 좋아', 보컬과 피아노의 간결한 진행으로 싱그러운 아침의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Complex', 요즘은 좀처럼 듣기 힘든 전자음과 시작되는 흥겨운 곡입니다. 조금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그 전자음에서 어쩐지 90년대 가요의 느낌이 나네요. 가창력에 비중이 상당이 높은 요즘 가요보다는, 좋은 곡과 연주나 코러스에서 느껴지는 재치가 90년대 가요의 느낌으로, 특히 '윤상'의 곡에서나 들을 법한 것들입니다. 맑은 보컬과 키보드(혹은 피아노) 연주로 승부하는 '허민'의 노래들이 대부분 90년대 가요의 느낌인데, 이곡은 특히 그렇네요. '윤상'의 Best album을 통해 다시 듣게된 그의 노래는 시간이 갈 수록 빛이 나더군요. '나이듦'에 대한 조금은 진지하면서도 발랄한 고찰이 담겨있는 가사에도 공감이 갑니다.

'보석같은', 키보드 혹은 피아노가 중심이 된 '어처구니가 없네', '강남역 6번 출구'나 '아침이 좋아'가 '허민 스타일'의 곡이라면 이 곡도 그런 부류라고 하겠습니다. 그녀의 앨범을 이루고 있는 '스타일의 두 축' 중 한 축이 '허민 스타일'이라면 다른 한 축은 '밴드 바닐라 쉐이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구요. 후자에 속하는 곡은 앞서 이야기 했던 'Shake Song'이나 마지막 곡 '알면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까만 하늘 너의 눈동자는', 트랙 리스트만 봐도 두 버전으로 들어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떤 곡인지 알려주는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구요. 보컬과 피아노의 콤비와 잔잔히 바탕에 깔리는 오케스트라, 최소 투입의 최대 효과를 보여주는 '대중음악의 3대 사기'의 멋진 조합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간간히 들어간 코러스는 가사의 간절함을 더 해줍니다.

'I'm Lost', 낮게 깔리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하는 '허민'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뒤에 나올 '알면서도'보다도 마지막 곡으로 더 어울릴 법한 느낌입니다.

'알면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위기와 연주에서 밴드 '바닐라 쉐이크' 느낌의 곡입니다. 사실 '허민'과 '바닐라 쉐이크', 같은 주체들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구분하고 싶네요. 보컬의 비중이 줄어둘고 그 비중을 연주가 차지했다는 점이 '바닐라 쉐이크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허민'과 밴드 '바닐라 쉐이크'의 공연을 각각 보지 않은 청자들에게 이해가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앨범은 발매했지만 활발한 활동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그녀. 이 점은 비단 그녀의 고민만이 아닌 언더그라운드씬에서 태어나 메인스트림의 문을 두드리는 수 많은 밴드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하여 꺼지지 않은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곡들도 있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 혹은 느낌에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겨들을 만한 매력이 있는 앨범이고,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별점은 4개입니다.

2007/03/19 21:56 2007/03/19 21:56

에쿠니 가오리 - 마미야 형제

열심히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 중 가장 최근에 국내에 발매된 '마미야 형제'. 일본에서는 2004년에 출판된 작품이고 이번달에 동명의 영화도 국내에 개봉한다고 하니, 영화에 맞춰서 부랴부랴 번역되었나보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미야 아키노부'와 '마미야 테츠노부'라는 '마미야'가(家)의 두 형제 이야기를. '남성'을, 그것도 '두 명'이나 전면에 내세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인 듯하다. 작가는 연애에 번번히 실패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너무 비참하지도, 너무 우습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은 안타깝고 처연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답게도 두 형제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써왔던 그녀이기에, 두 형제를 중심으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들도 들려주고 있다. 남자 친구와 뜨거운 데이트(?)를 즐기는, '혼마 나오미'와 '혼마 유미',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혼마'가(家)의 두 자매나, '아키노부'의 직장 동료 '오오카키 켄타'의 부인 '오오가키 사오리', '테츠노부'와 같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동료교사와 부적절한 관계 중인 '쿠즈하라 요리코' 등... 아마도 주변 여성들의 '타입(?)'은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한 번 쯤은 나왔을 법하다. 역시 '불륜'은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소재이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은 소설이랄까? '어른의 고독'이 담겨있고, '어른의 좋은 점'도 담겨있다. 어른이기에, 어렸을 때 창피했던 일들을 이젠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만큼 고독하다. 어른이기에.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것일까?

적지 않은 나이, 30대가 되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서로 취미를 공유하고 부대끼며 사는 '마미야 형제'. 정상적인 결혼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무렵부터 일관되게 짝사랑만 해왔다. 상대의 이름을 지금도 나열할 수 있다. 어떤 애였는지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이런저런 씁쓸한 경험들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한 예로, 복도에 붙여 놓은 학교행사 사진들 중에서 원하는 사진의 번호를 종이에 적어 신청하게 했는데, 아키노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의 사진을 한 장 사려고 했다.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곁에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졌는지, 아키노부가 본인이 찍히지도 않은 사진을 사려고 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에 퍼져, 사진의 주인공에게 항의를 받았다. 거센 항의였다. 그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주위 여자애들은 동정했다. 정작울고 싶은 쪽은 아키노부였는데.
2007/03/17 15:49 2007/03/17 15:49

정민아 - 상사몽(相思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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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에 '퓨전 국악'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정민아', 그녀의 뜨거운 데뷔 앨범 '상사몽'.

가요계에 몇년전부터 간간히 불고 있는 '대안 열풍'. 작년 '두번째 달'의 성공 이후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올해는 '정민아'라는 가야금 연주자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퓨전 국악'을 들려주는 앨범 '상사몽'을 살펴봅니다.

국악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이 되어'을 첫곡으로 시작하여,  해금(아마도 그녀의 단짝 공경진의 연주)와 베이스와 함께 하는 경쾌한 퓨전 국악 연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 부는 창가에서'로 이어집니다.  제 기억에 '바람 부는 창가에서'는 공연에서 정민아가 말하 길, '공경진을 위한 곡'이로고 한 만큼 해금의 선율이 중심이 되는 곡입니다.

퍼커션, 콘트라베이스, 해금과 함께한 '새야 새야'는 어린 시절 동요를 다시 떠올리며 감상에 빠져들게 할 만합니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곡 '상사몽(Radio Edit)'은 '작사 황진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아 황진이의 시조를 가사로 했나봅니다. 연정이 지나쳐 생기는 병인 '상사병'에서 차용한 제목처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꿈에서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심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사에서 절절히 뭍어나는 그리움은 심금을 울리는 첼로의 선율로 배가 됩니다. 두 사람이 만나길 바라는 '중도'는 아마도 모든 차별을 뛰어넘은 그런 이상세계가 아닐까합니다.

이어지는 '노란 샤스의 사나이'는 상당히 오래전에 발표된 가요(1961년)를 그녀의 감각으로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보사노바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녀의 음악이 왜 퓨전 국악이라고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합니다. 그녀의 꺾어지는 창법과 세련된 리듬이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미나 탱고' 역시 퓨전 국악을 이어가는 곡으로 '보사노바'에 이어 '탱고'와 국악이 만난 연주곡입니다. 아코디언과 가야금의 너무나도 멋진 어울림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마져 들게합니다. '미나 탱고'의 '미나'는 그녀의 이름 '민아'를 발음대로 쓴 듯하네요.

독특한 제목의 '로봇 일기'는 제목에서주는 예상과는 달리 '퓨전'보다는 '국악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하지만 가사가 재밌습니다. 로봇이 녹슬어가는 모습을 가사에 담아 무너지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Lullaby of Birdland'는 '째즈'와의 만남을 들려주는 곡으로,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던 '스탠다드 째즈 넘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곡 '뱃노래', 역시 '새야 새야'와 같이 우리 민요를 그녀의 감각으로 되살려낸 곡입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보너스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상사몽'의 'Original Version'입니다. 'Radio Edit'이 4분에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Original Version은 6분이 넘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만큼 구슬픈 연주를 더 즐길 수 있죠.

홍대 클럽 공연에서 털털한 모습의 그녀만 보다가, 언론에 소개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낯설기까지 하네요. 일부 언론에서 그녀의 음악을 '퓨전 국악'과 더불어 '월드 뮤직'이라고 소개하는데, '월드 뮤직'이라는 소개는  다시 한번 재고해야하지 않을까요? 저에게는 '월드 뮤직'이라고 함은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이되는 미국과 영국,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음반 시장을 갖고 있는 일본, 그리고 서유럽, 한국 정도를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 3세계의 토속적 혹은 민속적 음악'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국악이 민속적 음악의 성격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음악을 '월드 뮤직'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웃기다는 생각입니다. 다분히 서구적인 시각이라는 거죠. 우리까지 그런 시각을 고수할 이유가 있을까요?

'퓨전 국악'을 표방하는 '정민아'의 음악이 한국 음악계에서 '국악'이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요계'의 위기가 찾아온지 몇년 째이지만, 가요계 자체의 체질 개선보다는 외부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해왔고 그런 시도들은 거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후발 주자들의 성공으로 음악 주류의 변방에 있었던 '국악'이라는 장르가 한국 대중 음악의 단순한 '대안'이 아닌 '주요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7/02/10 17:19 2007/02/10 17:19

파니핑크(Fanny Fink) - Mr.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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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시작을 알리는, '파스텔뮤직' 소속 밴드로 2007년 첫 앨범 'Mr. Romance'를 발표하는 '파니핑크(Fanny Fink)'.

'Pink'가 아닌 'Fink'가 들어간 밴드 이름은 영화에서 차용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fanny'는 '속어'이고 'fink'도 좋은 의미는 아니네요. 어쨌든, 공연이 괜찮다고 입소문으로 알게 되었고, 미리 들어본 '24'가 상당히 좋은 느낌이었기에 앨범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리뷰를 쓰는 동안 같은 레이블 소속의 '올드피쉬'가 앨범을 발매하였고, 역시 같은 레이블의 최고 인기 밴드 '허밍 어반 스테레오'와 최고 기대주 '더 멜로디'가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기에, 다른 앨범들에 가려지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좀 있네요. 하지만 정말 좋은 앨범이라면 그 와중에도 자신을 빛을 묵묵히 발하겠죠.

'24',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의 첫곡입니다. 시원한 느낌때문에 요즘같은 겨울보다는 날은 점점 더워지고 밤바람은 시원한 초여름에 들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도시 외각의 조용한 밤 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가사까지 고려한다면 '행방을 알 수 없는 24세, 초여름의 밤'이랄까요? 참 좋은 인상을 주는 첫곡이라고 하겠습니다.

'향을 담은 비 for Haru', 바로 앞선 '24'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의 곡입니다. '24'가 '팝'과 '락'의 사이 어디 즈음에 있는 곡이라면 '향을 담은 비'는 'Casker'나 'W'같은 '일렉트로니카'에 가깝다고 할까요? 'Casker'와 비교하자면, 'Casker'의 보컬 '융진'과 '파니핑크'의 '묘이'의 음색의 차이로 인해, 강렬함은 떨어지지만 '파니핑크' 쪽이 더 가냘픈 느낌입니다. '비'가 들어간 제목 뿐만아니라, 낮게 깔리다가 절정에서 찌르는 듯한 보컬과 질주하는 듯한 연주가 '비'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게 하네요.

'Sweet', '팝-락'과 '일렉트로니카'를 지나 이번에는 '보사노바'입니다. 이런 다양한 장르를 차용하는 모습은 '클래지콰이'나 '캐스커'같은 '일렉트로니카'와 결합한 밴드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 이 밴드의 정체성을 참 궁금하게 합니다. 앞선 두 곡이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다면 'Sweet'는 제목처럼 달콤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 앞선 세곡이 기복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잔잔히 흘러가는 곡입니다. 일명 '착한 남자(혹은 여자) 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비애를 노래하거나, 그들에게 비애를 안겨주는 가사입니다.

'Signal Lamp', 밴드 '파니핑크'의 '지향점'이 되었으면 하는, 90년대 가요 분위기가 나는 경쾌한 연가입니다. 가사 뿐만 아니라 보컬과 코러스의 느낌이나 믹싱, 기타 반주, 간주의 일렉기타 솔로까지 여러 면에서 그런 느낌을 갖게 합니다. 요즈음 가요에서 기본 공식 중 하나처럼 되어버린 화려한 오케스트라 세션이 없다는 점도 그렇구요.

'11월', 가사는 오직 '나'와 '라' 밖에 없고 재생시간도 2분이 되지 않는 interlude 형식의 곡입니다. 앞선 곡들의 팝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겨울의 입문이자 연말을 알리는, '시작과 끝의 기로'에 서있는 제목 '11월'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Railroad', '11월'과 마찬가지인 연주곡 형식의 곡으로 2분이 조금 넘습니다. '11월'이 앨범의 전반을 마무리하는 곡이라면 'Railroad'는 앨범의 후반을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앞선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앞선 곡들이 보컬과 연주에 여러 이펙트를 통해 화려한 팝적 느낌이 강했다면, 이 곡에서 느껴지는 조금 건조한 어쿠스틱 연주들이 그런 기대를 강하게 합니다. 기차소리와 코러스는 아른한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널 만나러 가는 날', 'Sweet'와 비슷한 보사노바 느낌입니다. 하지만 'Sweet'와 비교했을 때 보컬은 좀 담백해졌고 연주도 그렇습니다.

'다신', 역시 90년대가 물씬 느껴지는 곡입니다. 앞선 어느 곡보다도 담백한 보컬과 멜랑콜리한(우울하고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가사가 그런 느낌이 들게합니다. 특히 그 멜랑콜리(melancholy)는 분명 슬픔만을 토해내는 요즈음 가요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수성이네요. 첫인상이 너무 좋은 '24'와 함께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으로 선정하고 싶네요.

'민트 하늘의 꿈', 서늘한 들판에 누워 유유히 흘러가는 가을 하늘을 보는 듯한, 잔잔한 느낌의 곡입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난한 팝-락 트랙입니다. 앞선 '민트 하늘의 꿈'이 유유하고 잔잔한 '느낌'이지만, 이 곡은 '그냥 평범'하다고 할까요? 앞선 트랙과 비슷한 정서이지만 아니, 비슷한 정서를 들려주기에 차별화를 둘 수 있는 '+ α'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두 곡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역시 뒤에 있는 트랙에게 그런 감상이 붙었을지도 모르겠네요.

'Lucia', 마지막 곡으로 애니메이션의 엔딩곡이어도 괜찮을 느낌입니다.. 많은 곡에서 '가성'으로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진성'으로 생각되는 맑고 힘찬 보컬이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강하게 합니다. 그만큼 앨범에서 가장 밝은 느낌의 곡이기도 하구요. 전반의 긴 연주 후에야 들을 수 있는 보컬도, 연주곡으로 시작해서 절반쯤 올라가고 노래가 시작되는 엔딩 크레딧을 생각나게 합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강렬한 임팩트'로 승부하기 보다는 한 곡 한 곡이 강하게 튀지 않는 잔잔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잔잔함 속에서도 소소한 감정들, 재미들을 찾을 수 있네요. '쿨'한 아니, '쿨'해보이려는 노력들, 오늘은 조금 슬프고 눈물도 조금 나겠지만 내일은 더 성숙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조금은 시린 20대 초반의 감정들, 노래들...별점은 3.5개입니다.

2007/02/07 17:06 2007/02/07 17:06

'의료법 개정안'에 한탄하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료법 개정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정말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이 땅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하는 것이 그렇게 못 마땅한 일인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정부는 모두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라지만 과연 그런가요? 지난 2000년 '의약분업'때 어땠나요? 그때도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명분 아래 의사들의 반대는 정부,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의 뭇매를 맞으며 묵살되었었죠. 그 결과는 어떤가요? 고작 약을 싸는 일에 드는 국민건강보험 지출액이 '의약분업 전 2조원'에서 '의약분업 후 4조원'으로 증가했다네요. 고작 약을 봉투에 넣는 일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지출이 많은거죠? 왜 약을 싸는 일에 국민들이 더 부담을 해야하죠? 그때 '국민 건강 증진' 외치던 무리들은 모두 어디갔나요?  왜 우리 정부는 100년은 커녕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나요? 왜 우리는 반성할 줄 모르죠?

이번 개정안의 일부 내용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알아도 뻔히 보이는데, 왜 정부와 언론은 또 눈을 가리려고 할까요?

그야말로 의사가 '교과서대로' 진료를 해도 '과잉 진료'라고 하는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과연 누가 옮은 것일까요? 교과서라하면 물론 영어로 쓰여진 미국에서 나온 교과서를 말합니다. 미국의 실정을 한국에 적용한다는 점이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의학'이란 엄연히 서양의 학문입니다. 그리고 그 '의학'이란 학문의 최정점에 있는 나라가 미국이구요. 그 최정점만큼, 의료비 지출의 부담이 가장 큰 나라가 미국이기도 합니다. 의료 수준이나 의료비 지출 모두 최정점에 있는 만큼, 미국의 교과서는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진료과정의 최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겁니다. 단지 '최소의 비용'은 아니겠지만, '비용 대비 효과', 즉 '효율'에서 최고를 낼 수 있는 진료 과정을 그 '교과서'가 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교과서로 진료하는 것이 국민과 사회를 위해 올바른 의료가 아닐까요? 누가 어떤 근거로 그런 진료를 과잉 진료라고 하죠?

왜 정부는 어떤 근거도 없이 추진하는 일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하죠? 지금 한국과 같은 '이상한 의약분업'을 시행하는 의료 선진국이 어딘가요? 이번 개정안 같은 시도를 하는 국가는 또 어딘가요? 왜 정부는 의료의 내실을 다지려 하지 않고, 부실로 몰고 가려하죠? 자본주의적인 즉, '영리적 의료법인'인 외국계 병원을 들려오려 하면서, 정작 국내 의료는 사회주의로 몰고 가려하나요?

우리 정부의 우스운 점은 어느 부분보다도 의료를 민간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무조건 통제하려는 점입니다. 주위에 국공립 병원이 얼마나 있나 생각해보세요. 수도권 대학 병원만 생각해 볼까요? 국립대 대학병원하면 저는 '서울대학병원'과 그에 딸린 몇명 병원 밖에 생각나자 읺나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수 많은 대학병원들, 대부분이 사립대학병원 즉 민간이 설립한 병원입니다.

의료비의 막대한 사회적 지출로 골치를 썩고 있고 의료비 지출이 가정 파산의 큰 원인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의료시설의 국공립 설치 비율은 50%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수준인지 아시나요? 국공립병원은 10% 정도랍니다. (이 수치에서 '병원'이 아닌 '의원'은 제외일 겁니다. 의료법 상 병원과 의원의 정의는 다릅니다.) 단순히 병상수만으로도 국공립의 차지하는 비율이 역시 10%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외치는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거죠?

이런 비율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지금은 보이지 않겠지만, '한국 의료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미 FTA를 진행하면서 논의 되었던 '의료 시장 개방'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외국계 병원과 의료 개방에 대한 '암울한 예측'은, 썼던 관련글(http://bluo.net/1223)을 참고해주세요. 예로, 정말 FTA가 성사 되어 의료 시장이 개방된다면, 얼마전에 반대를 외치던 '한의사'들은 역시나 힘들어지겠죠. 개인적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한의학'을 꾸준히 발전시키지 못한 한의사들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니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죠. '약사'들도 역시 암울해 질 것같네요.

FTA의 본질은 '기업'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모든 병원에 강제로 적용되고 있는 '의료보험적용'을 문제 삼아서 , 아마도 높은 수가로 의료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외국계 병원'이나 '의료 자본'이  '한국 정부'를 제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정부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의료보험이 강제가 아닌 선택이 된다면 어찌될 까요?

아마 모든 병원은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병원들이 의료보험을 빠져나갈 겁니다. 정부에 압박에 숨통을 막혔던 많은 병원들이 빠져나가지 않을까요? 누구나 알 만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병원들은 당연히 빠져나가겠죠. 그 병원들은 국공립이 아닌, 자유로운 '사립'이고 그만큼 자신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터무니 없는 의료 수가'를 정상화 시켜주지 않는 이상 상위 그룹에 속하는 대학 병원들이 이탈합 것입니다. 적은 의료 보험 수가로 많은 환자를 보나, 비보험으로 적은 환자를 보나 수입이 비슷하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나요?

문제는 강제적으로 묶어둘 수 있는 병원 비율이 10%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대학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한데, 그때 정말 몇일 대기해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보험적용 없이는 수배 혹은 수십배 뛰어버린 진료비와 수술비의 사립병원을 갈 엄두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수가를 올려주어 잡아둘 수 있는 사립병원들도 있겠지만, 이미 터진 뚝을 막기는 뚝이 떠지기 전에 보수하는 일보다 힘든 일이지요.

많은 개념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한미 FTA의 '의료 시장 개방', 저는 제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바라고 있구요.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보다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다수의 의견입니다. 죽기 일보 직전인데, 어차피 이대로 압박당하면 죽을 터인데, 개방된다고 못되어야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2007/02/04 15:56 2007/02/04 15:56

일곱 빛깔 사랑

'일본의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모았다는 책, '일곱 빛깔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있다는 점도 구매한 이유이지만, 아직 모르는 다른 일본의 여성 작가들의 글이 궁금하기도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드라제'.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그녀의 소설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드라제'는 중년과 청년, 두 다른 나이대의 여성의 시각에서 회상하는 형식이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회상에 잠겨드는 두 사람, 나이대가 다른만큼 사고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려한 것일까? 적어도 그녀의 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역시 중년의, 현재의 그녀는 '쿨'하다.

'기쿠다 미쓰요'의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 현재 36세가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 셋 중 한 친구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회상이다. '외도'는 일본 여성 작가들의 단골 소재일까? '에쿠니 가오리'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다음에 나올 몇몇 글도 그렇고 '외도'의 관한 이야기다. 화자의 '유부남과 연애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다. 유부남과 연애하기에 골든위크, 연말,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함께 할 수 없고, 결국 '연애 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런 날을 함께 보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연애' 대한 짧은 생각이 담겨있다. '연애 동맹'이라는 이름이지만, 그 두 친구의 관계도 '연애'가 아닐까? 꼭 이성과만 '연애'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이노우에 아레노'의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 역시 '외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주관심사는 아니다. 부인의 외도와 결국 헤어지기로 한 부부, 그 둘이 헤어지며 부인이 짐을 싸서 나가는 날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수년 만에 기록적인 강우는 부인의 발목을 잡는다. 남편에의해 구조된 옆집 고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부부의 죽은 고양이, '테르'는 대신할 수 없듯, 두 사람의 사랑은 변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니무라 시호'의 '이것으로 마지막'. 이 글도 '외도'와 약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처럼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작가의 나이가 적어도 30대나 40대일텐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치(bitch, 소설 속 그대로의 표현)'들의 이야기를 꽤나 재밌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우습거나 그런 이야기만은 아닌, '관계'와 '성장'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거 할까? 성장통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과 그런 성장통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계의 종말. 좋아하는 친구와 멀어지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후지노 지야'의 '빌딩 안'.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인 '일곱 빛깔 사랑'에 어울릴 만한 '정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 관계'의 한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옮겠다. 거리에서 우연히 묘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보게된 주인공이 그를 같은 빌딩 안의 다른 회사 직원임을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어떤 '시시한 연애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하지만 시시하다기보다는 소박하도 해야겠다. 이 후에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냥 친구가 되었으려나.

'미연'의 '해파리'. 작가의 이룸이 심상치 않은데, 책 앞쪽의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역시나 한국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글이 상당히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같다고 할까?

'유이카와 케이'의 '손바닥의 눈처럼'. 드디어 '진짜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애인 '료지'의 한 순간 실수를 참지 못하고 1년 후에 만나자고 한 주인공 '나오'와 료지와의 하룻밤 불장난을 한 애인 '다에코'을 보낸 '슌스케', 한 달의 한 번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에 대한 담론들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자의 입장, 여자의 입장, 아마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눈에서 멀어지면 역시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 끝을 만날 때 까지의 끊임 없는 탐색, 그것이 진짜 '연애의 본질'일까? 그래도 가장 훈훈한 결말을 보여주는, '순백의 사랑'.

정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하나가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해파리'는 좀 난해한 점이 있어서 읽기 힘들었지만.) 이제 에쿠니 가오리외에 다른 일본 여성 작가들의 책도 하나 하나 찾아 읽어볼까? 결국 시간의 문제인가? 독서도, 연애도.

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는 잘 나가는 컴필레이션이나 샘플러를 찾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쩌면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곱 빛깔 사랑'같은 '컴필레이션'이라면 일본 소설 입문자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일인지, 그때 나오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모든 것은 아마도 이 손바닥의 눈처럼 녹아버리고 말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면.
2007/01/30 22:00 2007/01/30 22:00

묵향 22권 : 폭풍전야

지난해 3월에 21권이 나오고 약 10개월 만에 나온 22권. 정말 너무 오랜만에 나오니 이전에 자세한 내용들이 생각이 날 듯 말 듯하여 읽기가 힘들더군요. 그래도 빨리 읽어버렸습니다. 궁금해서 미루어둘 수가 없지요.

'폭풍전야'라는 제목처럼 작가가 20권대 초반에서 끝낼 마음이 없는지 무슨 일을 여러개 벌리려나 봅니다. 역시 묵향의 대활약상은 나오지 않고 여러 사건 전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네요.

아르티어스는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다시 나타났으니, 또 뭔가 큰 일이 벌어지겠죠. 22권 끝에서 아르티어스와 만통음제가 만나는데 과연...

그나저나 예스24는 무슨 배짱인지 2천원 추가적립금 기준도 5만원으로 늘었고, 신간의 배송도 늦네요. 음반과 DVD도 함께 살 수 있어서 예스24를 주로 이용하는데 조만간 바꾸던지 해야겠습니다.

읽을 책들이 밀렸는데, 신간에 눈이 돌아가니 책이 자꾸 쌓이네요.
2007/01/24 18:32 2007/01/24 18:32

W. 워런 와거 - 인류의 미래사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W. 워런 와거(Walter Warren Wager)'의 저서 '인류의 미래사'. 부제는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고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원제를 직역하면 '미래의 짧은 역사'가 된다. '미래의 역사'라니. '역사(history)'는 원래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나. 미래(future)와 역사(history)가 같이 쓰여있는 제목이 좀 어색하다.

미래학 저서라고 할 수있는 책이지만,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미래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22세기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20세기 말부터 현재(22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 사이사이마다 편지, 일기, 서신 등의 그럴싸한 글들을 수록하여 각 시기에 살던 소시민의 삶도 조명하고 있다. 마치 범지구적인 '심시티(Simcity)'를 하면서 중간중간 '심즈(Sims)'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할까?

작가의 예상 혹은 예언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단순히 사회학적인 시각 뿐만아니라,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미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한다. 나처럼 잡학다식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땡길 만한 구성이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만만하지 않은 양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이 쓰여진 때가 1989년 이후에 두번의 개정이 있었다는데, 2007년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맞다 싶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예상보다 세계는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 변화는 시간이 더 지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미래세계는 분명히 매혹적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꿈꾸었을 법한 일들이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한다. 과학의 발전에 힘 입어,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진다. 자유, 그 날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제 3차 세계대전을 치룬 뒤, 등장하는 '세계 국가'와 세계 국가의 붕괴 후 등장하는 '자유의 시대'. '통합과 분열', 세계는 이 두 단어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게 아닌가한다. 현재는 아직 분열의 시대지만 UN, EU, NATO 등 국경을 초월한 단체들이 등장하여 통합을 꿈꾸고 있다. 과거에 칭기스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대제국을 꿈꾼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오래 못가 와해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덕이란 알 수가 없다.

21세기와 22세기에 등장하는 유토피아(Utopia)에 가까운 모습들. 과연 지금의 인류가 그렇게나 빨리 그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세계의 변화'와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인류의 가장 '핵심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작가가 예상하는 것처럼 빨라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도 엄청나게 빠른 변화 속에 살고있지만, 책 속에서처럼 정말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는 멸망이 먼처 찾아올 듯도하다.

멸망보다는 발전과 진화를 선택한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실패와 위험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대해 아주 작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453쪽 "엄마......죽음......복제......안 돼."라는 미지의 외계에서 온 (해독된) 신호를 들려준다. 텅빈 공간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미래에서 온 경고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구, 즉 'gaia'를 복제는 인간 복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화석연료의 고갈, 국제 분쟁 등으로 인류에게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진화하느냐 혹은 멸망하느냐. 과연 인류는 그 운명의 기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 상황으로만 봐서는 후자에 가까워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 대한 옮고 그름의 판단은, 100년 후에 혹은 200년 후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과연 그 때 이 책이 '위대한 예견'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헛된 몽상'으로 남을 것인가? 전자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

2007/01/17 15:38 2007/01/17 15:38